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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피난민)들은 고향에 돌아갈 꿈을 거의 포기한 채 휴전 협정의 조인(1953. 7. 27)으로 이곳 천호동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믿음의 정열만은 대단하였다. 정착민들 중에서 신앙생활하는 신자들은 그 당시 천호동장로교회(기독교 장로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천호동교회는 진화복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다. 진목사는 나중에 속초중앙교회로 옮겨 목회하다가 서울 상봉동으로 옮겨 상봉교회를 개척하였다.

천호동장로교회도 많이 성장하고 있던 중 최덕환 장로, 홍상현 집사, 유달수 집사, 박원섭 집사, 이상의 교인들이 교회 개척을 의논하며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다.

즉 천호지역에는 예수교 장로교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대한예수교장로 교회에서 신앙의 잔뼈들이 굵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훌륭한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목사를 찾아 의논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진화복 목사는 쾌히 승락하며 오히려 후원해 주었다. 이렇게 하여 광성교회의 씨앗은 심겨졌고 천호지역의 어머니 교회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