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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함께 공명하는 교회(1-4)

공명(共鳴)이란 ‘함께 운다 ’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공명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우리 연약함을 체휼(體恤)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 : 15) 몸소 다 겪으셨기에 몸으로 함께 아파하며 위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느헤미야 역시 공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황폐화된 조국 예루살렘의 소식을 물어 접했을 때 그는 주저앉아 수일을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3-4절). 그는 백성들과 함께 우는 자요 , 하나님과 함께 우는 ,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공명할 줄 아는 교회가 시대를 위로하고 , 시대에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Ⅱ. 신적 안목을 가진 교회(5-10)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당한 것이 하나님께서 유다를 그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단 1 : 1-2).

신적 안목을 가진 자요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느헤미야 역시 예루살렘의 멸망은 “나와 나의 아비집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진단합니다.(6-8) “왕이 정치를 잘못해서 ” , “사악한 강대국 바벨론 때문에 ”, “재수가 없어서 ”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세속적 , 인본주의적 , 염세적 안목으로는 시대를 위로하고 시대에 소망을 줄 수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열린 사람 , 곧 신적 안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사람 ,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Ⅲ. 나를 내려놓는 교회(11- )

기독교의 역사는 나를 내려놓는 자들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를 좇음으로 복음은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기 삶을 내려놓은 바울을 통하여 수많은 가정교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장들이 자기 배만 채우려 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 중세 교회가 부와 권력과 쾌락을 좇았을 때 시대를 고통케 하는 교회가 된 바 있습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11절) 세속적 성공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바사 수산궁의 안정된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결단입니다.

은혜로 사는 자 ,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교회가 시대에 소망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