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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왜 병자를 고치느냐는 유대인들의 핍박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 : 17).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실까요?

Ⅰ. 마음을 감화하심으로 (11-18)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1 : 13)

여기 소원은 세속적 욕망이나 야망이 아닙니다. 하나님 주시는 비전입니다. 느헤미야는 거듭 말합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2 : 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7 : 5) 본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일하는 자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첫째, 서두르지 않습니다(11). 느헤미야, 예루살렘에 돌아와 사흘을 지납니다. 주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둘째, 말을 아낍니다(12-16). 하나님이 행하게 하신 일일지라도 때가 될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셋째, 공명을 일으킵니다(17-18).

모든 백성에게 영적 감화를 일으킵니다.

Ⅱ. 손으로 도우심으로 (17-18; 1:8)

믿음의 사람은 자연의 움직임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 8 : 1,3) 에스라는 그 손길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였습니다(스 7 : 9, 28; 8 : 18, 31). 그는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스 8 : 22). 본문의 느헤미야, 거듭 에스라와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습니다!”(2 : 8, 18) 그 주님의 손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못 박힌 손을 내밀어 우리를 도우십니다.

Ⅲ. 형통케 하심으로 (19-20)

‘형통’(亨通)이라 함은 ‘고난 ’을 전제합니다.

길을 가로막는, 밀려오는 높은 ‘파도’를 전제합니다. 그런데 그 고난, 그 파도 앞에서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어 마침내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형통케 하신다 함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화하심으로, 그리고 당신 손의 직접적인 도우심으로 말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오늘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비웃고 훼방하는 무리들을 향해 선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20)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