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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았던 귀족과 관료들을 향해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9절)며 꾸짖었던 느헤미야는 이제 자신의 본(本)을 보여줍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15절)

Ⅰ. 소명이 분명한 지도자 (14-)

소명(召命; calling)이란 “어떠한 직분으로 왕이나 신에게 부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소명과 비슷한 말로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使命; mission)이란 “맡겨진 임무”를 말합니다. 소명과 사명 중에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까요? 당연 소명입니다. 소명이 확인될 때 사명이 바르게 규명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누구로부터의 부르심입니까? 아닥사스다 왕?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왕이 주는 녹을 사양하였습니다.

Ⅱ. 사명에 충실한 지도자 (15-16)

“누가 나를 이 자리에 부르셨는가?”가 확인된 뒤에 던질 물음은 “그렇다면 그분은 무엇을 하라고 부르셨는가?”입니다.

사명(使命)에 관한 물음입니다. 이전 총독들과 그 부하들은 소명감도 사명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백성들을 토색하고 압제하여 땅을 사고, 자기 배를 불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하지 아니하였다 말합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그의 부하들도 다같이 오직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다 말합니다.

Ⅲ. 백성을 위하는 지도자 (17-18)

다음 던질 질문은 “왜 부르셨는가?”입니다.

목적(目的)에 관한 물음입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일을 백성을 위하여 했다”(19절)고 말합니다. 지금 세인들의 관심은 일본과 리비아에 쏠려 있습니다. 일본이 겪는 문제가 지진과 해일의 자연재해라면 리비아는 인재(人災)입니다. 19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외국인 소유의 석유회사를 국유화함으로써 백성을 위하는 듯했지만 결국 42년간 장기집권하면서 8남 1녀의 자식들과 관, 군, 경, 방송, 석유회사 등을 독차지하면서 수백 조에 이르는 재산을 축적, 은닉하였습니다.

Ⅳ. 은혜를 구하는 지도자 (19-)

마지막 던질 질문은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19절) 느헤미야의 번개기도입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사람들은 섬김의 대상일 뿐입니다. 청지기는 주인께 상급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바랄 것은 이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