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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는 그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인생의 설계를 자신의 장례식부터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이 와 주면 좋을지, 가족과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해주면 좋을지를 생각해본 뒤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나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재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역사 속에 새롭게 등장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Ⅰ. 본성(本城)에 거하는 사람들 (7:5-73)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7:6-7) 이들은 일찍이 “사로잡혀 갔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랬다가 “놓임을 받고”, 이제는 “본성에 돌아온 자들”입니다. 그렇게 처음 귀환한 자들은 42,360명이었습니다(7:66). 오늘날 우리 모두는 죄 아래 팔린 자들이었습니다(롬 7:1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의 죗값을 치르심으로 그 죄로부터 놓임받는 길을 우리 앞에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본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벧전 2:24-25).

Ⅱ. 본성(本城)을 해하는 사람들 (6:10-19)

예수님께서 한번은 “가라지 비유”(마 13:24-30)로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음을 알고 경계하란 가르침입니다. 예루살렘 본성에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 모두가 본성을 위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본성을 해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마야, 노야다, 스가냐, 므술람 등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목적 삼지 아니하고 다른 무엇을 목적 삼아서 돌아온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느헤미야가 자신들의 목적에 걸림이 된다 생각할 때에 사단에게 매수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본성을 해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Ⅲ. 본성(本城)을 섬기는 사람들 (7:1-4)

문짝을 달고 성벽을 완성한 느헤미야는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뒤 하나니와 하나냐로 하여금 예루살렘 본성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본성을 섬기는 사람들로 세움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특별히 하나냐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7:2) 이것이 하나냐의 삶의 결정(結晶)이었습니다. 그는 위인이 충성된 자였습니다. ‘충성되다’는 말 “에메트”(tm,a)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변함이 없는, 진실된 사람, 그러기에 신뢰할만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였습니다.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역사 속에서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어 재등장하기를 바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