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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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이란 함께(同) 걷는 것(行)입니다. 신앙이란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형제와 동행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13절) 바울, 바나바, 마가 요한,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 몇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Ⅰ. 목적을 같이합니다.

목적이 같아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 같다는 것은 방향이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 뜻이 같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뜻이 같다는 것은 목적이 같다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다르면 도중에 하차합니다. 다른 편으로 갈아탑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목적 삼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삶, 증인의 삶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동행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마가 요한이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 부르신 증인의 삶, 사랑의 삶을 위해 동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요한이 도중하차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는 아직 어렸습니다.

하나님을 목적 삼을 만큼 그 신앙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Ⅱ. 보조를 같이합니다.

보조를 같이한다는 것은 호흡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구보할 때 구령을 붙여가며, 또는 군가를 부르며 구보합니다. 호흡을 같이함으로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멍에를 같이하는 자입니다.(마 11:29,30) 예수님과 멍에를 같이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멍에를 같이합니다. 멍에를 같이한다는 것은 목적을 같이하고, 보조를 같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가 같지 않으면 우리는 한걸음도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이 때 요구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기도, 영혼의 호흡입니다. 오늘 마가 요한이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이탈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이끄는 리더는 삼촌(사촌) 바나바였는데 선교 현장에서는 바울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이 보여 그 마음이 뒤틀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나바는 개의치 않는데 요한은 수용을 못합니다.

기도가 부족한 까닭입니다.

Ⅲ. 고난을 극복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권고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히 6:11) 게을러서 홀로 쳐져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살아 있는 자의 무덤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한 자가 짐을 들어줍니다. 격려합니다. 축복합니다. 그렇게 함께 고난을 극복하며 다같이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를 수 있습니다. 마가 요한이 버가에서 도중하차한 까닭을 전도 여정의 험난함에서 찾기도 합니다. 다음 목적지인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자면 강도들이 들끓는 해발 2천 미터에 달하는 고봉들로 이루어진 타우루스 산맥을 200km나 걸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탈했던 요한이지만 훗날 그는 성숙한 믿음으로 바울과 동행하는 자가 됩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마가 요한을 찾습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