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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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나님이 일으키신다, 예수를 힘입고 일어서야지’ 하며 우리가 한두 번 마음을 모질게 먹고 일어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변함없이 항상 일어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바울과 바나바는 모인 회중들에게 권고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43절) 항상 일어서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항상.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항상 은혜 가운데 있을 수 있을까요?

Ⅰ. 늘 하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42- )

시편 42편을 지은 시인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했습니다.

갈급함의 정도를 목마른 사슴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훌륭함은 갈급함의 정도에 있다기보다는 갈급함의 대상에 있습니다. 그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모든 고난을 딛고 변함없이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는 항상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시 27:4, 63:1, 143:6 등) 오늘 본문에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하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바울의 설교가 끝나자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청하였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모습은 예배를 사모하는 삶으로, 말씀을 사모하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늘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늘 은혜 안에 살 수 있습니다.

Ⅱ. 늘 성도의 교제를 나눕니다 (43- )

석탄 한 덩어리는 시커멓고 힘도 없습니다.

이런 석탄 덩어리들이 함께 모이면 더욱 시커멓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불꽃이 임하면 그 힘은 추운 겨울을 넉넉히 이기게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성도는 결코 거룩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모인 교회 역시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교회를 거룩하다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 본문 43절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서로 함께했습니다.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불어 동역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입니다. 교회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다른 교회로 옮길 수는 있지만 그러나 교회, 성도의 교제를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교제 안에 있을 때 항상 은혜 안에 살 수 있습니다.

Ⅲ. 늘 겸손히 자기를 낮춥니다 (44-45)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은혜도 겸손한 자에게 흘러갑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잠 3:34, 약 4:6, 벧전 5:5) 우찌무라 간조는 “구원은 회개에서 시작되고, 회개는 겸손에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곧 겸손해야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나 구원만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의 은혜도 겸손해야 임합니다. 항상 은혜 안에 살고자 한다면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은혜가 떠나는 까닭은 겸손으로 시작했다가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유대인들이 변심하는 것을 봅니다. 다음 안식일이 되었을 때 ‘온 시민’이 말씀을 사모하여 모였습니다. 이를 본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시기하였습니다.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교만해진 것입니다. 은혜가 떠납니다.

항상 은혜 가운데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늘 겸손히 자기를 낮추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