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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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말씀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오늘 본문에서 안디옥 교회는 일찍이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고 떠나오면서 그들을 주님께 위탁하였습니다. 주님께 위탁한다는 것은...

Ⅰ. 위탁은 믿음입니다 (23-25)

믿음이 없다면 맡길 수 없습니다. 위탁은 곧 믿음입니다.

영어에 “trust”란 단어가 있습니다. ‘믿다, 신뢰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 ‘맡기다, 위탁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39:4에 의하면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였다 했습니다. 그만큼 요셉을 신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이 전도했던 교회들을 더베로부터 시작하여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기까지 돌아봅니다. 23절에 의하면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였다” 했습니다. 여기서 ‘위탁하다’는 동사는 ‘파라티데미’입니다. ‘앞에 또는 곁에 놓다’, ‘어떤 이의 보호와 돌봄에 맡기다’는 뜻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그 모든 교회들을 관할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그들을 맡긴 것입니다.

Ⅱ. 위탁은 섬김입니다 (26- )

위탁은 책임회피가 아닙니다. 위탁은 게으름도 아닙니다. 위탁은 섬김입니다.

계속된 중보와 헌신이 따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3개월 전 27세의 한 여인이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8살, 4살, 2살 된 세 딸을 전 남편의 할머니 집 앞 길가에 버렸다가 아동복지법 유기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이것은 위탁(委託)이 아닙니다. 유기(遺棄)입니다. 유기는 계속된 돌봄과 사랑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탁은 유기와 다릅니다. 위탁에는 계속된 섬김과 사랑이 따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을 파송해준 안디옥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26절) 했습니다. 여기서 ‘부탁하였다’는 것은 ‘위탁’을 말합니다. 헬라어 원문은 완료시제를 사용했습니다. 한 번 맡기고 관심을 끊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송한 날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중보하여 기도하고 필요들을 공급하며 후원한 것입니다.

위탁은 섬김입니다.

Ⅲ. 위탁은 자유입니다 (27-28)

위탁은 자유를 줍니다. 평강을 줍니다.

맡기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보디발은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염려하거나 불안해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집안일은 요셉에게 맡기고 자신은 국사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올렸습니다. 그 마음에 주저함이나 염려가 없었습니다. 위탁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그의 자손을 번성케 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문제를 맡긴 것입니다.(히 11:19) 오늘 성경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머물면서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28절) 기록합니다. 1차 전도여행 중에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을 주님께 위탁하고 떠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봐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 주시는 자유와 평강을 누리며 안디옥 교회를 섬기는 데 집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