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Home > 예배로의 초대 > 금주요약설교    

두 주 전 주일 말씀에 성숙한 신앙의 사람은 “강요(强要)하지 않는 사람”(행 15:1-5)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기쁨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고, 형제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Ⅰ. 외식(外飾)하지 않는 사람 (5-9)

바리새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을 찾아가 다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로만은 구원받지 못하니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와 격렬한 다툼이 있었고, 마침내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복음은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겉을 꾸미는 것은 생명이 없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 구원받는다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책망받은 주된 이유는 ‘외식(外飾)’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두고 “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갈 6:12)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했습니다.

겉보다는 안을 가꾸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Ⅱ. 차별(差別)하지 않는 사람 (9-11)

차별하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닙니다.

미국이 평등을 자랑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그러나 최근까지도 차별이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것이 100년이 채 되지 않고,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준 것은 5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흑인들을 차별하는 문화는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흑인이 마시는 음수대와 백인이 마시는 음수대가 따로 있었습니다. 식당에서도, 버스에서도 흑인석과 백인석이 따로 있었습니다. 미성숙한 사회였습니다. 또한 성(性)이나 인종을 가지고 차별하는 사람 역시 성숙치 못한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안에도 이러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차별했습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 가졌던 유대인의 선민의식, 우월의식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9절)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11절)

그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Ⅲ. 타협(妥協)하지 않는 사람 (12-21)

다니엘이 바벨론 궁중학교에서 삼 년간 교육받게 되었을 때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자기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때문에 왕이 내리는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대신 채식을 하게 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하여 허락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육식을 한 다른 친구들보다 용모도 지혜도 출중하여 바벨론 총리로 등용됩니다.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고 자기의 중심을 지키는 사람을 존귀하게 높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과 베드로는 바리새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복음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마지막으로 일어난 야고보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바울과 베드로의 복음 이해가 바르다는 것을 확인해 주면서 한편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는 율법 중에 몇 가지를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받은 자가 행할 덕목’으로 수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로써 야고보는 비(非)복음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중심을 지키는 조화를 이뤄냅니다. 나를 지키고 상대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야고보는 실로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