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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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인도자요,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인도자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총회는 그들이 정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고 가르칠 자로 “형제 중에 인도자”인 유다와 실라를 선택하여 보냈습니다. 추석 명절입니다. 가족 모든 형제들이 모이는데 거기서 여러분이 “형제 중 인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Ⅰ. 충성된 수종자 (22-24)

“최고의 리더(leader)는 최고의 팔로어(follower)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리더는 인도자(引導者)요, 팔로어는 수종자(隨從者)입니다. 충성된 수종자가 훌륭한 인도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윗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현재의 자리에서 아랫사람들을 잘 인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충성된 수종자가 내일 훌륭한 인도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충성된 수종자였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충성된 수종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의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지시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교사가 되려했다가 문제만 일으켰습니다.

가정에서 형제 중 인도자가 되려면 먼저 부모를 잘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Ⅱ. 자기를 희생하는 자 (25-26)

인정받는 인도자가 되려면 인생의 거룩한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위하여 자기를 내려놓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목적이 되어서는 희생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남을 희생시키는 자가 됩니다. 섬기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본문 25-26절의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의 인도자인 베드로와 야고보 사도를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려놓는 자였습니다. 내려놓는 자, 희생하는 자가 인도자가 됩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가정에서 희생하는 자가 되어 보십시오. 형제 중 인도자가 됩니다.

Ⅲ. 형제에게 사랑받는 자 (25-26)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어주시는 희생의 권위, 사랑의 권위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권위에는 힘으로 지배하는 권위가 있고, 사랑으로 다스리는 권위가 있습니다. 교회에서의 권위는 직분으로, 지위로, 힘으로 지배할 수 있는 권위가 아닙니다. 오직 섬김과 희생으로 감동을 주어 자발적인 순종을 일으키는 권위입니다. 사랑의 권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는 바나바와 바울을 두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사랑받는 자들로서 형제 중 인도자였습니다.

Ⅳ. 복음에로 인도하는 자 (27-29)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27절)

이는 유다와 실라가 구원은 오직 예수로 말미암는다는 것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불미(不美), 부정(不淨), 부덕(不德)한 것은 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원과 성화에 관한 복음의 말씀을 전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제 중 인도자의 할 일입니다. 모세가 광야 르비딤에 있을 때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온 장인 이드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이드로의 마음이 열리고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했습니다.

올 추석은 여러분이 형제 중 인도자 되어 온 가족을 복음에로 인도하기를, 그래서 마침내 인가귀도(引家歸道)의 은혜가 여러분 가정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