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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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예루살렘 총회는 유다와 실라를 택하여 보내면서 총회이름으로 발행한 서신 한 통을 딸려 보냈습니다. 거기서 야고보와 베드로 사도는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시작하는 말로 총회의 결정과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이는 “성령이 인도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Ⅰ. 주님을 앞세우는 삶 (28- )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있은 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목이 곧은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라,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 주님이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면 올라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반면 가데스바네아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 없이 자기들끼리 올라갔다가 가나안인들에게 대패하여 호르마까지 쫓긴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고보와 베드로 사도는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다”(28절)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 판단대로 사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기도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내 지식, 내 경험을 좇으면 안 됩니다. 매 상황, 매 순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음성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앞세우는 삶입니다.

Ⅱ. 내 몫을 다하는 삶 (29- )

잠언 26:15절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밥을 차려주어도 그것을 떠서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시지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매 상황마다 요구하시는 것이 달랐습니다. 누구에게는 말씀으로 선언하셔서 그냥 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자리를 들고 일어서라, 누구에게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누구에게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언제 치유가 일어났습니까? 내 몫을 감당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앞서서 행하시지만 내게 요구하시는 몫은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야고보와 베드로 사도는 “성령과 우리는”이라고 했습니다. 29절에서는 “이에 스스로 삼가라” 말했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잘 되리라”(29절) 하십니다.

Ⅲ. 날마다 동행하는 삶 (29- )

훌륭한 삶은 꾸준하게 성장하는 삶입니다. 물론 도중에 실수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다시 일어나 날마다 주님과 동행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 교회 형제들에게 율법의 말씀을 따라 불미(不美)한 것, 부정(不淨)한 것, 부덕(不德)한 것들을 멀리하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권고하기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삼가다’는 말은 헬라어로 ‘디아테레오’입니다. ‘테레오’만으로 ‘지키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디아’(dia)라는 전치사가 붙었습니다. 이것은 영어의 ‘through’와 같습니다. ‘계속하여’ 또는 ‘두루’라는 의미가 더하여집니다. 그래서 ‘디아테레오’ 하면 ‘계속적으로 지키다’ 또는 ‘주의 깊게 지키다’는 뜻입니다. 성숙은 한두 번의 결단과 승리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