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Home > 예배로의 초대 > 금주요약설교    

오늘 설교의 제목은 피하고 싶은 제목이었습니다. 본문 39절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로 시작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존경받는 두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었고, 결국엔 화합하지 못하고 피차 갈라섰다는 기록입니다. 오늘 본문이 분열된 오늘 우리 광성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일까요?

Ⅰ. 사소한 일로 다툰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가 릴리푸트라는 소인국에 갔을 때 릴리푸트는 블레퍼스크라는 이웃나라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이들은 본래 한 나라였는데 삶은 계란을 아래 둥근 쪽부터 까느냐 아니면 위 뾰족한 쪽부터 까느냐의 문제로 갈라져 다툰 것입니다. 조나단은 이 소설을 통해서 보수와 혁신으로 갈라져 정쟁을 일삼았던 당시 영국의 휘그당과 토리당을 꼬집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싸움은 대체로 이렇듯 사소한 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갈등의 영, 분열의 영이 이를 부채질하여 문제를 점점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과 바나바가 다툰 까닭은 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 합니다. 바울은 지난 1차 전도여행 도중에 그만두고 돌아간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사소한 일로 심각한 갈등을 벌였습니다.

Ⅱ. 갈라설 수 있다

한국 장로교회는 1950년대에만 세 번 갈라졌습니다.

1951년도에 신사참배 문제로 고신교단이 갈라졌고, 1953년도에는 김재준 목사의 자유주의 신학 문제로 기장교단이 갈라졌고, 이어 1959년도에는 박형룡 목사의 삼천만환 사건과 W.C.C. 가입 문제로 통합교단과 합동교단이 갈라졌습니다. 이후 통합교단은 하나의 교단을 유지해 왔으나 합동교단은 수없는 분열을 거듭했습니다.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란 이름을 가진 교단만 백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 하나님을 섬기면서 안으로는 누가 교권을 쥐느냐는 현실적인 문제로, 그러나 겉으로는 누가 참된 신앙과 교리를 지키느냐는 명분을 내세우며 갈라지고 또 갈라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다투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결국 갈라섰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전도여행을 떠났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 훌륭한, 존경받는 바울과 바나바도 다투고 갈라졌습니다.

Ⅲ. 그러나 하나되어야 한다

오늘 일이 있고부터 약 15년 정도가 지난 주후 65년경, 바울이 로마 감옥에 다시 투옥되어 사형언도를 받습니다.

그때 죽음을 앞둔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했습니다. 이는 바울과 마가와의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언급이 없지만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문제도 해소되었음을 넉넉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후 4:8) 광성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어 언젠가 하나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