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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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바울은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 중 디모데를 전도여행에 동행시키면서 그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복음을 저버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바울은 헬라인인 디도에게는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유는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할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도자의 마음과 자세”에 대하여 일러줍니다.

Ⅰ. 접촉점을 만듭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자기가 복음 전하는 자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19-22) 접촉점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에게 할례는 비본질적인 문제였기에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다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전도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함이요, 그것을 접촉점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Ⅱ. 자기를 낮춥니다

당시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헬라 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던 로마제국은 제국 내에서 헬라문화를 권장하였습니다. 헬라어가 공용어로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대 로마제국에 비하면 식민 지배를 받는 아주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디모데에 대하여 어머니는 유대 여자이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반은 유대인이요 반은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도 헬라인으로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할례를 행하였다는 것은 헬라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살기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말한다면 자기 신분을 낮춘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전도는 전도자가 자신을 낮추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Ⅲ. 자기를 희생합니다.

전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복음만 증거해도 복음이 가진 능력이 역사하지만 복음을 상대방을 향한 나의 사랑에 담아 전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물론 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작고 부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사랑에 담겨 전달될 때 나의 사랑은 그의 닫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를 변화시킵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라 했습니다. 그 복음을 담아 전할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희생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를 내려놓는 것이어야 합니다. 디모데는 성인이 되어 할례를 받는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헬라인으로서의 권익도 내려놓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디모데와 동역함으로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이 전도요, 전도가 곧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