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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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규례”는 헬라어로 “도그마”라 합니다. 유대교의 죽은 율법주의로부터 복음을 지켜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본래의 목적과 정신에서 벗어날 때 도그마는 사람을 살리는 법(法)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독단(獨斷), 독선(獨善)이 될 수 있습니다. 도그마가 사람을 살리는 법으로 계속하여 기능하기 위해서는...

Ⅰ.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자 모세오경으로부터 248가지의 ‘하라’는 명령과 365가지의 ‘하지 말라’는 명령을 포함 모두 613가지의 세부 규례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미쉬나라 하고 이를 해석한 것을 탈무드라 합니다. 마태복음 15:2절의 “장로들의 전통”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처음 동기는 좋았으나 이후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을 때 본래 의도하셨던 마음과 정신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이들 규례는 생명을 잃은 도그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부딪히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교조주의(dogmatism)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야 살리는 법이 됩니다.

Ⅱ. 사랑이 바탕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셨습니다.(마 22:40)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했습니다.(롬 13:10) 한번은 바리새인들과 예수님과의 사이에 결혼과 이혼에 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들먹이며 이혼증서를 써주면 아내를 버릴 수 있지 않느냐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은 너희의 완악함을 인함이요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안 된다 하셨습니다. 연약한 여인들을 남편들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최소한의 규정이요 남발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그러면 차라리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말합니다. 사랑을 상실한 자들에 의해서 도그마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독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바탕이 될 때 도그마는 살리는 법이 됩니다.

Ⅲ. 생명이 목적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생명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613가지의 미쉬나 규례를 만들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생명을 목적삼지 아니하고 자기 의를 목적삼았습니다. 자기들의 경건을 자랑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목적삼은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만든 도그마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만든 613가지의 규례 중에 안식일 규례가 39가지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안식일에 왜 병자를 고치느냐, 왜 밀 이삭을 까불러 먹느냐며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막 3:4)

이렇듯 생명을 잃은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깨고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고백하는 기독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들의 “작정한 규례”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는 중세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마녀사냥이란 이름으로 죄 없는 숱한 생명을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이에 16세기 루터와 칼빈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이 만드는 도그마는 사랑과 생명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기 위하여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