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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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본문 6-10절은 “분별하는 바울”을 보여줍니다. 거듭 길이 막히고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그의 일행과 함께 이것을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건너가 복음을 전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어지는 11절은 “순종하는 바울”을 보여줍니다. “직행하였다” 말합니다.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은 “순종하는 자의 삶과 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Ⅰ. 흔들리지 않습니다 (11- )

“직행하여”란 말은 헬라어로 “유뒤드로메오”입니다.

이 단어는 “유뒤스”와 “드로메오”의 합성어입니다. “드로메오”는 “달리다”는 말입니다. “유뒤스”는 부사로서 “즉시로, 곧게, 바르게”라는 뜻입니다. 직행하였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상에서 백성들에게 촉구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하 18:21) 둘째, 곁눈질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가던 출애굽 백성들이 브올에서 미디안 여인들로 인해 곁길로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곁눈질함으로 휘청거리지 않습니다. 셋째, 뒤돌아서지 않습니다.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오늘 바울과 그의 일행은 이러한 흔들림이 없이 마게도냐를 향하여 직행하였습니다.

Ⅱ. 주님만 바라봅니다 (12- )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순종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일까요?

왜 머뭇거리고, 왜 곁눈질하며 게걸음하고,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는 것일까요? 첫째, 의심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부족합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부르신 길이라는 확신이 부족합니다. 믿음 부족은 두려움과 염려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우리로 머뭇거리게 합니다. 둘째, 유혹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길을 가지 못하게 갖가지로 유혹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곁눈질하게 합니다. 게걸음하게 합니다. 셋째, 욕망 때문입니다. 욕망이 우리의 목적을 상실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향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시선’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선이 떠나는 만큼 의심이 들어갑니다. 유혹거리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욕망이 자극되어 목적을 잊고 방향을 상실합니다. 그래서 길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로 직행하였습니다.

Ⅲ.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13-15)

이렇게 순종하는 자의 길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확신으로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 37:23-26) 하나님의 길을 분별하고 가는 자,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기뻐하신다 합니다. 주의 길을 가지만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때론 넘어질 순 있다 말합니다. 그러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은 하나님이 당신의 손으로 붙드시고 건져주시기 때문이라 고백합니다.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로 마게도냐의 첫 신자가 될 루디아를 만나게 하셨고, 유럽 전도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울의 순종이 낳은 열매요 하나님의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