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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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십자가는 역설이 되었습니다. 죽이는 십자가가 살리는 십자가가 되었고, 치욕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십자가는 역설을 낳는 힘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십자가를 붙들 때 십자가는 또 다른 역설을 낳았습니다. 옥문이 다 열리고 사슬이 다 벗어졌습니다.

Ⅰ. 분노의 맘이 평강의 맘으로 바뀝니다 (19-25)

바울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자기들 수익이 끊어진 주인들이 분노하여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빌립보의 관리들에게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없는 말로 죄를 씌워 고발함으로 바울과 실라는 옷이 찢긴 채 채찍에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이들의 분노는 이기적인 분노요 불의한 분노입니다. 이 자리에서 정말 분노해 마땅한 이들은 바울과 실라입니다. 여종의 영혼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었는데 악한 자들에 의해 이런 수모와 고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혈기를 부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밤에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알았던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 5:11,12)

이것이 기도하는 자가 경험하는 십자가의 역설입니다.(빌 4:6,7)

Ⅱ. 불평의 말이 감사의 말로 바뀝니다 (25- )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을 모신 배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예수를 믿기로 했는데 고난이 밀려옵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기로 했는데 재난이 덮칩니다. 악인들은 형통한데 의인들은 고생합니다. 악인들에 의해 의인이 짓밟힙니다. 게다가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불평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합 1:2) 오늘 바울과 실라가 꼭 이 상황입니다. 여종을 살려주었는데, 복음을 전하였는데, 불의한 자들에 의해 끌려가고 매질당하고 깊은 옥에 갇힙니다. 기도합니다. 그러나 밤이 깊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마침내 그들의 기도는 찬양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감사의 고백으로 바뀐 것입니다.

기도는 십자가의 역설을 낳는 힘입니다.

Ⅲ. 원망의 장이 선교의 장으로 바뀝니다 (26-32)

피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고난의 장입니다. 광야입니다. 풍랑입니다. 재앙입니다. 상실입니다. 질병입니다. 장애입니다. 실패입니다. 고독입니다. 죽음입니다. 절망입니다. 원망의 장, 골고다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십자가가 세워지면 그곳은 은혜가 임합니다. 축복이 됩니다. 생명이 자랍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사명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십자가는 원망의 장을 선교의 장이 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벗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을 벗어나질 않았습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 원망의 자리가 선교의 장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우리의 당한 현실이 우리의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의 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