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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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에서도 헬라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베뢰아에서도 믿는 사람이 많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덴에서는 단지 “몇 사람이 믿으니”(34절) 기록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아덴에서의 전도를 실패로 평가했습니다. 아덴에서 실패 이유를 근거로 “인생 승리의 비결”을 찾아봅니다.

Ⅰ. 분노 중에 않습니다! (17:16-18)

바울이 아덴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분노 중에 전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분노 중에 무엇을 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바울이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였다 했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덴에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늘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는 지적 유희를 즐기는 자들이었습니다.(21절) 이들과 변론하였다는 것은 논쟁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논쟁을 통해서 그들을 꺾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전도는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안에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전도는 분노로, 논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됩니다. 섬김으로 됩니다.

전도만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섬길 때 됩니다!

Ⅱ. 협력해서 행합니다! (18:5- )

하나님은 협력의 본이 되십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창조와 구원 사역에 함께 아름답게 협력하십니다. 또한 우리로 협력하여 일하게 하십니다. 아담에게 하와를 돕는 배필로 붙여주셨습니다. 모세는 아론, 훌과 협력하였고, 다니엘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바울도 바나바와 동역했고, 2차 전도여행에서는 실라, 디모데, 누가와 함께 동역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곳 아덴에서 바울은 혼자입니다.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아덴의 상황을 보고는 동역의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내려오게 했습니다만 그들은 결국 다음 행선지인 고린도에서나 합류합니다.(18:5) ‘우리’란 표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누가도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지 못하고 홀로 아덴 사람들을 상대하여 복음을 전했으나 열매는 초라했습니다.

협력해서 해야 합니다.

Ⅲ. 십자가를 붙듭니다! (17:19-34)

바울은 아덴에서의 실패 이후 고린도에 내려가서는 오직 십자가의 도만을 전하였습니다.

훗날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5)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아덴에서 무엇을 경험하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그가 배운 헬라 철학과 헬라 문학을 인용하면서 아름다운 지혜의 말로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다음 선교지인 고린도에서는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험한 십자가에 능력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