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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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 11:16,17) 무관심과 불신을 지적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관심과 믿음”에 대하여 일러줍니다.

Ⅰ. 병적인 관심은 믿음을 훼방합니다 (12-13)

병적인 관심이란 관심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관심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시종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목적입니다. 나의 이익, 내 영광이 목적입니다. 사마리아 성의 마술사 시몬 그랬습니다. 빌립을 따라다니며 예수를 믿는다 하고 세례도 받았지만, 베드로에게 돈을 주면서 은사도 구하였지만 그의 관심은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 능력을 통해 자칭 큰 자가 되는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특심했지만 그 열심은 교회를 박해하는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병적인 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병적인 관심은 믿음을 훼방합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에 갈리오 총독이 부임하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법정에 세우려 했습니다. 바울의 선교활동을 봉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듯 병적인 관심은 믿음을 훼방합니다.

Ⅱ. 무(無)관심은 믿음을 멀리합니다 (14-15)

이사야는 멸망 직전 이스라엘의 죄를 이렇게 지적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사 5:11,12) 관심 있는 곳에 시선이 가고, 시선 가는 곳에 관심이 따라갑니다. 저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있지 않았습니다. 술과 연락(宴樂)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무관심은 결국 믿음을 멀리하게 했고, 화를 초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갈리오 총독은 바울에 대한 고소 사건을 처리하는데 그 문제가 종교에 관한 것이라 하여 기각시켰습니다. 세상적으로는 규정을 따라 일을 잘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다루면서 하나님을 향한 관심으로 나아가질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10여년 뒤 네로 황제를 축출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영적 무관심과 불신앙으로 종말을 맞은 것입니다.

Ⅲ. 건강한 관심은 믿음을 일으킵니다 (16-17)

다른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외식과 불법을 지적하는 예수를 미워하고 멀리할 때 니고데모는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예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순 없었지만 예수를 향한 그의 관심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그는 예수를 이용해서 다른 무엇을 얻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알기를 원했습니다. 건강한 관심입니다. 건강한 관심은 믿음을 일으킵니다. 믿음이 자란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예수님을 변호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엔 예수의 제자 된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회당장 소스데네가 유대인들로부터 구타를 당했습니다. 바울 처단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습니다. 소스데네는 은밀하게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소스데네는 믿음을 드러내고 바울의 동역자로 헌신합니다.(고전 1:1)

건강한 관심은 믿음을 일으킵니다. 이번 부흥성회에 건강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함으로 믿음을 일으키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