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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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삼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전도하며 양육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 바울은 에베소에 들를 겨를이 없었기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 항구로 불러 자기가 에베소에서 어떻게 섬겼는지 그 모본을 기억시키며 교회를 부탁하였습니다. 첫 번째 볼 수 있는 바울의 모본은 “첫날부터 지금까지”란 말 속에 있습니다. 주님과 복음과 교회를 섬기는 데 “변함이 없는 바울”입니다.

Ⅰ. 변함이 없는 “겸손”

미가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중에 하나는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라크)하는 것”(미 6:8)이라 했습니다.

어떻게 변함없이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을까요? 겸손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 바울은 “모든 겸손”이라 했습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에베소 교회 성도들 가운데서 겸손함으로 주님과 복음과 교회를 섬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겸손’은 헬라어로 ‘타페이노프로쉬네’입니다. ‘타페이노오’는 ‘낮게 하다’란 뜻입니다. ‘프로쉬네’는 ‘마음’입니다. 곧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렇듯 겸손했던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고했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롬 11:20)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롬 12:16) 또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서도 권고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겸손이 변질되면 교만해집니다. 교만하면 넘어집니다.

Ⅱ. 변함이 없는 “눈물”

눈물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 42:3) 이것이 바울의 눈물이었습니다. 바울은 삼 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눈물로 전도했고, 눈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절) 바울의 눈물은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도,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도 뿌려졌습니다.(고후 2:4, 빌 3:18) 바울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을 향한 바울의 사랑, 교회를 향한 바울의 열정이 식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눈물이 마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를 향한 주님의 눈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Ⅲ. 변함이 없는 “섬김”

금에는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남녀가 우리 사랑 영원토록 변치 말자며 금으로 된 반지를 교환합니다. 그런데 금반지가 사랑을 지켜줍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사랑은 너무도 쉽게 변합니다. 작은 시련이 닥쳐도 쉽게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19절)을 말합니다. 주님을 향한 바울의 사랑과 섬김이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수많은 또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이, 그 시험이 주님을 향한 바울의 사랑과 섬김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은 23, 24절의 고백대로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나를 향한 주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날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기에 나도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