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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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이 그리는 목자는 주는 목자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가 꼬집는 이스라엘 멸망 당시의 목자들은 착취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겔 34:2,3) 오늘 바울은 자신의 모본을 들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주는 목자”가 될 것을 권고합니다.

Ⅰ. 탐심을 버립니다 (33- )

주는 목자가 되려면 먼저 탐심(貪心)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베푸는 자가 되지 못하고 움켜쥐는 자가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탐심에 있습니다. 탐심이 무엇입니까? 더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왜 더 가지려고 합니까? 소유를 통해서 만족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눅 12:15) 속지 말아야 합니다. 소유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평안이, 생명이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33절) 바울은 인생의 참된 만족과 평안과 생명이 예수 안에 있음을 아는 자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베푸는 자, 주는 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주는 자, 주는 목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자입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자입니다.

Ⅱ. 힘써 수고합니다 (34-35상)

아굴이 기도합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 또한 주기도문에도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이는 오늘 필요한 만큼만 일해서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소극적인 삶입니다. 적극적인 삶은 힘써 일해서 200%, 300%의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나 내게 필요한 양식만 취하고 나머지는 궁핍한 자들과 나눕니다. 이것이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부름받은 아브라함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교회에 손 벌리지 아니하고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자신과 동행의 필요를 충당했다, 도리어 약한 사람들을 도왔다 말합니다. 여기서 “수고하여”란 말은 헬라어로 “코피아오”입니다. 코피가 나도록 힘써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코피아오! 그가 나눔의 기쁨을 누립니다.

Ⅲ. 말씀을 기억합니다 (35하- )

오늘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향한 긴 설교를 말씀 하나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맺습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35하) 누구의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왜 이 말씀을 기억하라 한 것일까요?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억되는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합니다. 그 생각이 건강한 행동을 낳습니다. 베푸는 사람, 주는 목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은 주신 말씀 그대로 사신 분입니다.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우리를 위해 쏟으셨습니다. 바울은 받은 말씀 그대로 산 자입니다. 자기의 시간과 생활과 생명을 아낌없이 주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주님 주신 말씀, 주님 보여주신 십자가의 삶을 기억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