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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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사도는 바울을 해칠 수 있는 유대인들이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21:20)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도 전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22:3)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열심은 다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열심과 함께 있어야 할 것,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자 한다면 열심은 이런 열심이어야 합니다.

Ⅰ. 지식이 있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21:37-22:5)

다윗 왕 때 삼 년 기근이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사울 왕의 잘못된 열심 때문이었다 지적하셨습니다. 과거 가나안 정복전쟁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맹세 때문에 여호수아가 기브온 백성들을 살려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사울 왕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삼하 21:2) 그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잘못된 열심이 후손들을 고통케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유대인들이나 예수 만나기 이전의 바울이나 다같이 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 율법에 대한 열심이 특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예수를 핍박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일로 귀결되었습니다. 왜입니까?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2) 이런 열심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열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있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Ⅱ. 물으며 가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22:6-18)

사울이 왕으로 세움 받을 때 모든 백성이 좋아할 만큼 준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능력과 열심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물을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러니 늘 자기 생각, 자기 감정을 따라 열심 낸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묻는 자였습니다. 늘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올라가리이까?” “올라가라.” “어디로 가리이까?”(삼하 2:1)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두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행 13:22/ 개역)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달라집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묻는 것입니다. “주님, 누구시니이까?”(8절)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10절) 사도행전과 그가 쓴 서신서들에서 보는 바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늘 무릎 꿇습니다. 주님보다 앞서가지 않습니다.

이런 열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Ⅲ. 끝까지 가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22:19-23)

며칠 전 신문에 강남에 잘나가는 30대 의사가 성매매 여인과 일탈행위를 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 때 의사가 되기 위한 열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아내를 향한 열심도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돈 잘 벌어 편안하게 사는 것, 즐겁게 사는 것이 목적이 되면 어느 순간 우리는 게을러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삶에서 일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목적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끝까지 가는 열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바울은 “주의 증인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말합니다. 바울 역시 훗날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 순교자로 생을 마칩니다. 일평생 흔들림이 없이 끝까지 가는 열심이 아름답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