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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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던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회칠한 담”이라 했습니다. 이 말에는 하나님이 거짓선지자들을 두고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겔 13:10) 하신 말씀과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다”(마 23:27) 하신 말씀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회(灰)칠한 담은...

Ⅰ. 스스로 죄를 가립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자기의 죄를 가리는 것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어봅니다. 선행을 쌓아 덮어보려 합니다. 또는 힘 있는 사람을 찾아 무마시키려 합니다. 이것이 회칠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리려 한 것과 같습니다. 불완전합니다. 불가능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는 것입니다. 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고백합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 주시는 은혜를 입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양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아담과 하와를 입혀주신 것과 같습니다. 완전한 속죄를 이룹니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회를 칠하는 것이라면, 세리의 기도는 보혈을 덧입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회칠한 담이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성의(聖衣)로, 자기의 율법적 의로 죄를 가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를 고백함으로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입니다. 보혈로 덧입힘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Ⅱ. 자기를 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사 44:18)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끼어 있었습니다. 탐욕의 눈입니다. 교만의 눈입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회개할 줄 모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죄에 죄를 더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짙게 회를 칠합니다. 그런데 ‘회칠한 담’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잘 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울의 입을 치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3절)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은 자는 그 눈의 비늘이 벗어집니다. 하나님이 보입니다. 자기 눈의 들보가 보입니다. 그래서 겸손합니다. 회개합니다.

정결합니다. 거룩합니다.

Ⅲ.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오늘 바울이 아나니아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3절)

회칠한 담은 무너집니다. 주님이 허무십니다.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허물어서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망하리니...”(겔 13:14) 바벨탑이 무너졌듯이 세상 바벨론도 무너집니다. 성경은 바벨론을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계 17:1)라 했습니다.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2-3) 했습니다. 회칠한 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음녀 바벨론이 “한 시간에 무너진다” 반복해서 말씀합니다.(계 18:10, 17, 19)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의 말마따나 훗날 유대인들의 반란 때, 도수관(導水管)에 있는 은신처에 숨어 있다가 끌려나와 암살당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은 자는 주님이 구원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