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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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기가 경험한 당대의 세대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빌 2:15)라 하였습니다. 그 마음이 뒤틀리고 불순종하는 세대입니다. 오늘 바울이 경험하는 그들의 모습은 “욕망을 좇는 세대”입니다. 하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욕망을 좇습니다.

Ⅰ. 욕망의 출발은 사탄입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절대공간(vacuum)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그 공간을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우게 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유혹합니다. 이에 여자가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 했습니다. 욕망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욕망의 출발은 사탄입니다.

Ⅱ. 욕망의 대상은 세상입니다.

선악과는 본래 하나님 주신 복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것을 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와와 아담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서 입에 넣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 죄에 이른 것입니다. 욕망이란 축복의 경계선을 넘어 죄에 이르게 하는 탐심입니다. 욕망의 대상은 세상입니다. 주된 것은 돈(金)과 성(性)과 권력입니다. 이것은 본래 하나님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미혹으로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벨릭스 총독과 그의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가 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첫째, 권력을 좇습니다.(10- ) 10절에 벨릭스 총독은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했습니다. 거만한 모습입니다. 그는 본래 노예출신으로 자유민의 신분을 얻어 유대 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입니다. 그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권력을 쟁취하고 지키려 했습니다. 고대 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는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세를 휘둘렀던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하나님 주신 권력은 섬기라고 주신 권세입니다. 그러나 욕망은 그 선을 넘어 불의, 부정을 행하게 합니다. 부리는 권세입니다.

둘째, 성(性)을 좇습니다.(24- ) 24절에 벨릭스 총독이 그의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찾아옵니다. 벨릭스에게는 이미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총독이 된 뒤에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로 있는 드루실라를 유혹하여 아내로 삼습니다. 드루실라는 남편을 버리고 권력자 벨릭스를 택합니다. 욕망을 절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性)은 결혼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 경계선을 넘어 혼전순결(婚前純潔) · 혼외순결(婚外純潔)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셋째, 돈(金)을 좇습니다.(25-27) 벨릭스 총독은 바울을 자주 불러내어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벨릭스의 관심은 말씀에 있지 않았습니다. 진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돈에 있었습니다. 벨릭스는 총독의 지위를 남용하여 뇌물과 여자를 탐하였던 욕망의 사람이었습니다. 돈(물질)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탄은 돈을 우리의 우상이 되게 합니다.

Ⅲ. 욕망의 끝은 멸망입니다.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렇듯 그 권력을 남용하여 돈과 여인을 탐했던 벨릭스는 주후 60년 경질되어 베수비오로 추방당했다가 주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용암에 매몰됩니다. 욕망의 끝은 멸망입니다.(약 1:15) 욕망은 욕망을 품은 자신과 욕망의 대상뿐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을 파괴합니다. 공멸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했듯 “하나님은 우리로 주님을 향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쉼을 누리기까지 우리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