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Home > 예배로의 초대 > 금주요약설교    

“쉬지 아니하는 악”이라는 말은 야고보서 3:8절에서 “길들여지지 아니한 혀”에 대하여 쓴 표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경험하는 세상,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쉬지 아니하는 악(惡)입니다.

Ⅰ. 행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1-3)

지난 1일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또 다시 총기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용의자는 수업 중 침입해 “종교가 무엇이냐” 물은 뒤 기독교인만 골라서 쏘았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는 이에 대하여 “총기 사건과 언론 보도, 이와 관련한 나의 기자회견도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정신질환자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몇 달에 한 번씩 대규모 총기 난사를 일으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한 선진국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악은 도무지 쉴 줄 모릅니다. 탈레반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IS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쉬지 아니하는 악을 봅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가 부임 삼 일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 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대제사장들이 바울을 고소하면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였습니다.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3절) 2년 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갇혀 있을 때부터 품었던 궤계를 여전히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쉬지 아니하는 악입니다.

Ⅱ. 심판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4-12)

베스도 총독은 바울을 재판하려거든 가이사랴로 내려오라 했습니다.

그들은 베스도를 좇아 내려가 바울을 재판석에 불러내었습니다. 앞선 벨릭스 총독 때에도 변호사 더둘로를 동원하면서까지 시도했지만 실패한 바 있기에 그들은 이 재판 역시 그렇게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7절)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베스도 총독의 마음이 바뀝니다.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 앞에서 심문을 받겠느냐 묻습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안위는 생각지 않은 무책임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이후 바울은 로마로 이송되어 2년 동안 옥중에 거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가이사의 재판을 받고 무죄 석방됩니다. 이는 저들의 죄악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또한 저들이 그렇게 막으려 했던 복음이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 퍼져나가도록 도운 역설적인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쉬지 아니하는 악을 위하여는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습니다.(벧후 2:17)

Ⅲ. 늘 깨어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8-12)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3년을 주님과 동행하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젠 득도했으니 그만 하산하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마 26:41) 그러나 베드로는 잠들었고 넘어졌습니다. 훗날 베드로는 자기의 허물을 추억하며 제자들에게 권면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오늘 바울은 베스도 총독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게 재판을 받지 않겠느냐 물었을 때 2년 전 저들이 품었던 궤계를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본인이 품었던 비전,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을 생각해 냅니다. 그래서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합니다. 늘 깨어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도 끝까지!(히 3:14) 반면에 내 안에 있는 쉬지 아니하는 악은 어떻게 할까요? 내 안에 예수님이 주인 되게 하면 됩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혀”(약 3:8)라 함은 주인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회복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쉬지 아니하는 악을 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