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Home > 예배로의 초대 > 금주요약설교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개혁은 회복입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16절) 넘어진 자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증인입니다.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6절)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지금 여러분은 증인의 삶에서 떠나 주저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증인으로 일어서라!” 하십니다.

Ⅰ. 어제의 신앙과 경험만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사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6절)

주님이 사울을 당신의 증인으로 삼겠다 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삼겠다 하십니까?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입니다. 전자는 과거요, 후자는 미래입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증인은 어제의 신앙과 경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재입니다. 어제의 믿음으로 내일을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경험으로 아이 성을 얕잡아보았다가 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변화산 아래에서 한 귀신들린 아이 앞에서 무안을 당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어제의 믿음과 경험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신앙과 경험만으로는 안 됩니다.

Ⅱ. 박물관 신앙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박물관 신앙이란 왕년에는 내가 어땠는데 하며 과거의 신앙과 삶을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부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 관원으로 젊은 나이에 부귀영화를 걸머쥔 성공자였습니다. 그가 하루는 예수님께 찾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십계명에 있는 계명들을 열거하시자 자기는 그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노라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그가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등을 돌렸습니다. 그는 박물관 신앙을 가지고 영생을 확인받으려 했던 자입니다. 반면 역시 화려한 신앙경력을 가졌던 니고데모는 어제까지의 신앙과 경험으로 만족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날 예수님을 찾아왔고, 이후 계속된 예수님과의 교제 가운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를 붙드는 자가 되었습니다.

Ⅲ. 날마다 주님과 함께하는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정지한 자전거는 넘어지고, 고인 물은 썩습니다.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고, 흘러가야 합니다.

신앙도, 증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자가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동사는 현재형입니다. 지금 알고 있고, 또 계속된 교제를 통해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갑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기노스코’라 하는데 히브리어 ‘야다’와 통합니다. 히브리어로 ‘야다’는 ‘부부간의 친밀한 사귐’을 뜻합니다.(창 4:1) 부부간의 사귐이 끊어진 가정은 죽은 가정입니다. 연애 때까지의 사귐으로 가정생활을 유지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친밀한 사귐이 지속될 때 가정이 살아나듯,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지속될 때 증인의 삶도 건강하게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