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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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진정한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라고 말합니다. 어떤 친구가 진정한 친구일까요? 인디언 속담에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답니다. 좋을 때는 함께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외면한다면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친구가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친구가 한 분 계심을 말씀해 줍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Ⅰ. 우리를 친구라 불러주십니다.(14-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14,15절)

전에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속에 있는 생각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벗이라 하십니다. 복종하고 순응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교제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사 41:8) 그가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친구가 된 것은 그의 행위로 인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진 믿음 때문이었습니다.(창 15:6)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친구라 하십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Ⅱ. 희생으로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13- )

우리가 한 것은 없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해 하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희생입니다.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13절) 예수님께서 그 큰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이 말씀을 주신 다음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당신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었는데,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끊어졌던 교제의 끈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벗이라 하시며 교제하자 하십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Ⅲ. 이제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12, 16-17)

예수님께서 친구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명령입니다. 주인이요 스승이시지만 그러나 친구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그분의 요구, 그분의 명령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12절) 앞선 13:34절에서 이미 주신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성경의 모든 계명, 예수님이 주신 모든 말씀은 이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서로 사랑하라!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 합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 묻는 물음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답해 주셨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를 “예수신경”이라 부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점점 사랑이 식고 불법이 성해가는 이 시대입니다. 누가 크냐 하는 경쟁심과 누군가 잘되면 배아파하는 시기심으로 가득한 우리에게 큰 찔림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