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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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종교개혁”에 관해 말씀을 전합니다. 개혁은 회복이라 했습니다. 넘어진 자가 다시 증인으로 일어나는 것이 개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보여주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6절)

Ⅰ. 내가 주인 된 삶으로는 안 됩니다.

내가 증인 된 것은 나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 된 삶으로는 하나님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6절) 여기서 “종”은 헬라어로 “휘페레테스”라 합니다. 헬라어로 “휘포”는 “아래에”란 뜻이고, “에레테스”는 “키를 만지거나 노를 젓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휘페레테스” 하면 선장의 명령을 따라 키를 움직이거나 노를 젓는 노예를 말합니다. 배의 방향과 속도는 선장이 정합니다. 노예는 키를 움직이고 노를 저을 뿐입니다. 배의 움직임을 보고 선장을 알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선장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나는 그분 아래에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키를 움직이고 노를 젓는 종입니다. 그렇게 나는 선장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선장이 되려 해서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Ⅱ. 사사기 신앙에서 일어서라 하십니다.

성경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 했던 캄캄한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사사시대입니다.

당시의 어지러운 상황을 그린 성경이 사사기입니다. 사사기의 주제는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이는 인간 왕이 없었던 현실을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맘대로 살았던 저들의 죄를 꼬집은 것입니다. 사사기를 읽노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캄캄해져 옴을 느낍니다. 내가 주인 된다는 것은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았을 때, 그는 보나 보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이제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는 보지 못하나 이제 보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눈을 떠 보게 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18절)

Ⅲ. 날마다 내가 죽어야 한다 하십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내가 아직도 약한 것은 내가 아직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직 너무 강하다 하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 아직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아직도 약하다는 고백입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아닌 유한자 내가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늘의 회심 사건 이후로 달라졌습니다. 큰 자가 아닌 작은 자가 되기로 합니다. 강한 자가 아닌 약한 자가 되기로 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내 안에 사울은 죽고 그리스도가 살 때 비로소 그는 강한 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 강함은 질그릇인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내 안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 기도,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날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보여주는 행복한 증인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