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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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16절) 오늘은 주님께서 에게서와 에게가 균형잡힌 증인으로 일어서라 하십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16절) “에게서”라 함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함을, “에게”라 함은 세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함을 말씀합니다. 이 둘이 균형잡힌 증인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Ⅰ. 나만 잘 믿으면 된다는 생각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명을 어기고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그러다 어려움을 겪고, 나중에 박넝쿨의 비유를 듣고서야 니느웨 백성까지도 아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나는 “나만, 우리끼리만의 신앙”을 가졌던 자였습니다. “나만 믿고 구원받으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만 선택하셨고, 우리만 사랑하신다” 생각한 것입니다. 이를 선민주의(選民主義)라 합니다. 칼 포퍼는 이것을 파시즘, 사회주의와 같이 열린사회의 적이라 했습니다. 선민의식은 폐쇄적인 공동체를 낳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은 공동체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예배공동체요 사명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세상을 축복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나만 잘 믿으면 된다는 생각은 안 됩니다.

Ⅱ. 친목회나 봉사단 신앙에서 일어서라 하십니다.

함께합니다. 같이할 줄도 압니다. 그런데 잘못된, 병든 신앙이 있습니다.

첫째는 “친목회 신앙”입니다. 친교병에 걸린 신앙을 말합니다. 예배공동체로서는 기능하는데 사명공동체로서는 죽은 교회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빼냄은 받았는데 세상으로 들어갈 줄은 모르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여 교제하는데 빠져 있습니다. 예배는 형식이 되었고 세상을 향한 관심은 없습니다. 세상 친목회가 되었습니다. 에게서는 있는데 에게가 없는 것입니다. 병든 신앙입니다. 둘째는 “봉사단 신앙”입니다. 봉사병에 걸린 신앙입니다. 교회를 무슨 구제단체나 정치단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일원인 각 개인이, 또는 교회가 일부 기관을 세워 그러한 일들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상실한 채 구제나 정치에만 몰입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에게는 있는데 에게서가 없는 것입니다. 역시 정체성을 상실한 병든 신앙입니다. 거기엔 생명이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구제단체도 정치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입니다.

Ⅲ.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으로 일어서라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이는 세상 속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을 동시에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지키며 세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내게 속했기 때문이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에게서의 신앙입니다. 이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저들을 하나되게 하시고,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세상이 저들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하옵소서.” 이는 세상을 향해 침투해 들어가는 에게의 신앙입니다. 에게서의 신앙과 에게의 신앙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에 동화되지 않은 채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보여주는 행복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