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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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란 말을 많이 합니다. 그 일환으로 주일임에도 성전에 나와 예배하는 데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28절) 코로나19로 인하여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게 되었지만 그러나 주님과의 심리적, 영적 거리는 더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Ⅰ. 붙드시는 하나님 (21-23)

다윗은 고난이 참 많았던 사람입니다.

사무엘하 22장은 노년의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고백한 노래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삼하 22:7,17) 오늘 본문의 시인도 붙드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23절)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으로 인하여 혹 주님의 손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손을 놓지 아니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7,28)

요즘 겪는 이 고난의 때에 더 강하게 두 손을 내밀어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Ⅱ. 인도하시는 하나님 (24상- )

그런데 오늘 시인을 고통케 하는 것은 몸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오늘 시인은 말합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1,2절) 내가 지금 실족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족은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시험입니다. 시험의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은 어찌 저리도 형통한데 하나님을 구하는 나는 왜 이리도 고난이 많으냐는 것입니다.(3-14절)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헛되다는 말까지 합니다.(13절) 그런데 마침내 시인이 고백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17-19절) 그리고 회개합니다.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22절) 이어 고백합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24절) 하나님은 당신의 교훈으로,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Ⅲ. 영접하시는 하나님 (24하-28)

오늘 시인은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후에는 영광으로 영접하시리니”(24하) 우리 하나님은 붙드시고, 인도하시고, 마침내는 영광으로 영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난 뒤에 베풀어주시는 영광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합니다. 사람들이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돌을 던졌습니다. 그때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서서 자기를 영접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행 7:55,56) 영광으로 영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시인은 아직 고난 가운데 있는데 고백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25,26절) 고난으로 인하여 실족할 뻔하였지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시인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비록 성전을 가까이 나아올 수는 없지만 깊은 묵상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경험하고 고백하는 광성교회 가족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