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Home > 예배로의 초대 > 금주요약설교    


Ⅰ. 예배하는 자리를 회복하라 하심입니다 (1-5)

예배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입니다. 아담은 동산에서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보냈습니다. 일곱째 날만 아니라 모든 날이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간교한 뱀, 마귀가 들어와 말씀을 비틀어 은혜를 저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선악과를 금하신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나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사귐은 끊어지고 마귀와의 사귐이 시작됩니다. 감사와 찬송은 사라지고 불만과 불평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제는 말씀을 회복하고 예배하는 자리, 곧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회복하라 하심입니다.


Ⅱ. 청종하는 자리를 회복하라 하심입니다 (6- )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아버지요 우리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요 우리는 종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말씀하는 분이시고 우리는 듣는 자입니다. 이를 청종(聽從)이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마귀의 말을 듣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아내의 말을 듣습니다. 그 결과 어찌 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6절) 불순종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제는 말씀을 회복하고 청종하는 자리로 나아가라 하심입니다.


Ⅲ. 회개하는 자리를 회복하라 하심입니다 (7-10)

뱀의 말대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었고 하나님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듣는 자가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하질 않습니다. 도리어 가리고 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7,8절) 벌거벗었으므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합니다. 부부 사이에 벌거벗었음이 무슨 부끄러움이고 두려울 일입니까?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입니다. 죄가 수치와 두려움을 낳았고, 그들로 가리고 숨게 한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제는 그 숨은 곳에서 나와 그 죄를 드러내어 회개함으로 자유한 자가 되라 하심입니다.


Ⅳ. 사랑하는 자리를 회복하라 하심입니다 (11-13)

하나님이 아담에게 어찌하여 선악과를 먹었느냐 물으시자 아담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2절) 아담이 이렇게 말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답했어야 옳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먼저 들은 자로서 아내를 잘 가르치고 인도하지를 못했습니다. 또 저 역시 하나님을 의심하고 내가 하나님 되려 하였습니다. 저를 벌하시고 아내는 사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합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내가 하나님이 되려 하면서 부부 사이에 금이 갑니다. 사랑이 식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은 말씀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이제는 서로를 사랑하는 자가 되라 하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