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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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이란 본질의 회복입니다. 혼탁해진 믿음을 선명히 함으로 잃어버린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개혁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 이후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그 믿음이 혼탁해질 대로 혼탁해졌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등장하면서 온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그 믿음을 선명히 함으로 나라를 새롭게 합니다.

Ⅰ. 말씀을 선명히 합니다 (1-2)

로마 카톨릭이 부패했던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말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죄 사함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 가르친 것입니다. 이에 루터는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며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외치며 사제들만이 독점하였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 성도들에게 보급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읽어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법궤를 가지고 블레셋을 물리치려 했다가 도리어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돌아온 법궤를 엘리아살이 지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신 것일 뿐 지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말씀을 열어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다스렸습니다.(7:6, 15-17, 12:23)

이로써 어둠의 시대는 가고 광명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개혁의 출발은 말씀을 말씀 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Ⅱ. 주님을 선명히 합니다 (3-4)

우리가 말씀을 떠날 때 제일 먼저 변질되는 것은 예배라 하였습니다.

세겜의 풍요에 젖어 예배를 잊었던 야곱이 그랬듯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역시 그랬습니다. 광야생활을 끝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정착해 살면서 그들은 하나님 외에 바알과 아스다롯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모두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신들입니다. 농사와 다산을 주관한다고 믿는 우상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이방신들을 더 위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합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3절) 너희 섬길 자, 주님을 선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여... 일찍이 여호수아도 오늘 너희 섬길 자를 분명히 하라 했고,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지 말고 너희 섬길 자를 분명히 하라 했습니다.

개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선명히 하는 것이 개혁입니다.

Ⅲ. 기도를 선명히 합니다 (5-11)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는 자기중심적인 기복주의로 오염되었습니다.

목적하는 바를 얻고자 신을 달래는 기도입니다. 이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우상숭배 의식에서 오염된 것입니다. 이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목적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수단시하여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기도를 가르치며 함께 기도합니다. 사무엘의 기도는 네 가지가 달랐습니다. 첫째, 중보하는 기도입니다.(5절) 둘째, 회개하는 기도입니다.(6절) 그는 종일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떼쓰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회개입니다. 셋째,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8절)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 했습니다.(12:23) 넷째, 내가 죽는 기도입니다.(9절) 사무엘이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했습니다.

건강한 기도는 내가 죽는 기도, 나를 내려놓는 기도입니다. 그 선명한 기도가 나라를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