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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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실로암이 열리는 믿음 (5-8))

오늘 본문 5~8절에 강한 대비가 나옵니다.

6절의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과 7절의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입니다. 실로아 물은 ‘실로암’(요 9:7)을 말합니다. 지하터널을 뚫어 예루살렘 성 밖의 기혼샘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여 만든 인공샘입니다. 예루살렘의 생명줄입니다. 반면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상류에서 발흥한 앗수르 제국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지적합니까? 아하스 왕이 실로아 물을 버리고 세상 친구 아람의 르신과 이스라엘의 베가를 기뻐하더니 이제는 그들 둘이 연합하여 공격해오자 더 북쪽에 있는 큰 하수 앗수르 왕을 의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결과 어떻게 됩니까? 그 큰 하수가 흘러들어와서 네 목에까지 미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세상이요 마귀입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이기는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실로암이 열리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보내주신 그리스도를 크게 보고 그를 귀히 여기는 믿음입니다.


Ⅱ. 성소가 열리는 믿음 (9-15)

아하스 왕은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외치는 이사야를 반역자로 몰아세웠습니다.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아하스 왕의 말을 따르지 말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거룩하다 고백하며, 그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하면서 “그(여호와)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14,15절)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고집하며 앗수르로 달려갔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성전 문을 닫았으며, 예루살렘 곳곳에 우상 제단들을 세웠습니다.(대하 28:16-24) 결국 그는 여호와의 진노를 사서 죽게 되는데 백성들은 그를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어서 왕이 된 아들 히스기야는 성전 문을 열고 예배를 회복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삶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소를 향하여 마음이 활짝 열리는 믿음입니다.


Ⅲ. 말씀이 열리는 믿음 (16-18)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16절)

왜 봉함하라 하신 것일까요? 지금은 들려주어도 들으려 않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후대의 다니엘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단 12:9) 그러나 하나님은 요한에게는 종말의 때에 있을 일들을 알려주시고는 인봉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때가 찾기에 이제는 말씀을 열어 선포되게 하고 증거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은 봉함하라 하셨지만 이사야의 두 아들을 징조와 예표가 되게 하셨습니다. 장남 스알야숩은 ‘남은 자는 돌아오리라’는 구원의 말씀이요, 차남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노략이 심하리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보이는 말씀입니다. 승리하는 삶은 말씀이 열리는 믿음에 있습니다. 말씀에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