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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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도를 잃은 아픔(1-5)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 1:5,17) 그렇습니다. 기도는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나오미,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합니까? 이들 부부 엘리멜렉과 나오미, 기도하지 않습니다. 두 아들을 데리고 가나안을 훌쩍 떠납니다. 모압으로 내려가 삽니다. 기도가 없었습니다. 왜 이 땅에 흉년이 들게 되었는지 묻는 물음도, 그러기에 회개도 없습니다. 하나님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도 되는지, 모압에 내려가 살아도 되는지 여쭙는 기도가 없습니다. 이방인 며느리들을 들일 때도 여쭙는 기도가 없습니다. 그랬다가 결국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잃는 아픔을 겪습니다.

기도가 사는 길입니다. 기도가 복받는 길입니다.


Ⅱ. 말씀을 잃은 아픔(6-18)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하되 말씀을 찾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이 길이요, 빛이기 까닭입니다.(시 119:105)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시 143:8) 오늘 나오미의 가정이 이 아픔을 겪게 된 까닭은 그들에게 기도도 없었고 말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찍이 주신 율법의 말씀이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2-4)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무시하고 떠났다가 이 화를 당한 것입니다. 6절에 베들레헴에 하나님이 양식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에 떠난 사람들이 돌아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입니다. 흉년이 들어 떡집에 떡이 떨어지니 사람들이 떠납니다.

교회는 말씀의 집입니다. 교회에 말씀이 떨어지면 성도는 교회를 떠납니다. 말씀을 회복해야 합니다.


Ⅲ. 이름을 잃은 아픔(19-22)

이름값을 하면 기쁩니다. 그러나 이름값을 하지 못하면 아픕니다. 부끄럽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으로 떠난 지 10년 만에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 그때 나오미가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19-21절) 우리말 성경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화입니다. 히브리말로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성경에 ‘나오미’란 이름과 ‘마라’란 이름에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나오미’는 ‘희락’(喜樂)이라는 뜻이요, ‘마라’는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나오미가 말씀생활, 기도생활을 멀리하였기에 이름값을 못한 것입니다. 나오미만이 아닙니다. 엘리멜렉, 베들레헴, 모두 이름값을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입니다. 이름을 회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