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쁘다 이 말이여 (3) - 부활
디모데후서 2:11-13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그리고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예배로, 감사로 올려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옥중 바울이 디모데에게 모두가 믿어야 할, 아름다운 말을 하나 더 알려줍니 다. 부활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과 관련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1.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부활한다! (11- )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11절) 여기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는, 영의 부활입니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을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믿는 자는 죄의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을 만났기에 영적으로 이미 부활한 것입니다. 사망이 그를 주장하지 못합니다.(롬 6:8,9) 둘째는, 삶의 부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고난과 실족케 하는 유혹은 늘 있습니다만, 매일의 기도와 회개로 마음을 지키고 다시 일어섭니다. 바울이 말한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는 삶,(고전 15:31), 정욕과 탐심을 십자 가에 못 박는 삶(갈 5:24)이 이것입니다. 맘의 부활입니다. 셋째는, 몸의 부활입니다. 옥중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박해기 때 두려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실제 있을 죽음과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6-8)
2. 주와 함께 참으면 주와 함께 왕 노릇 한다! (12상- )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12절) ‘주와 함께’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주를 인하여’ 참는 것이자, ‘주를 위하여’ 참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참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참는 것일까요? 어떻게 참는 것일까요? 세 단계로 생각할 수있습니다. 첫째, 마음을 다스립니다. 내 안에 일렁이는 감정을 다스립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했고, 성령의 열매는 절제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하였습니다.(잠 16:32) 그래서 성령 안에서 마음을 다스 립니다. 마음을 푸는 자는 늘 후회할 일을 만듭니다. 그래서 마침내 종 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늘 감사할 일을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됩니다.
둘째는, 믿음을 지킵니다. 박해기 때라 했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고난 상황을 견뎌내는 것입니다.(마 24:13, 히 3:14) 셋째는, 복을 빌어줍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마 5:10-12,44; 10:12,13; 롬 12:14-21, 벧전 3:9)
3. 주를 고백하면 주와 함께 동행한다! (12하-13)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12하) 부정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만 바울이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를 고백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주를 시인 한다는 것은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하되 누구 앞에서 해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시인합니다. 그때 구원이 임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그리고 사람 앞에서 시인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동행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서 주를 고백하는 자, 내주하시는 신비로 영원히 동행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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