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드로의 예수님, 나의 예수님!(3) 다시 세우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21:15
칭찬도, 책망도 목적은 하나입니다. 건강하게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를 버리기도 하 고, 모른다 부인하기도 하며, 마침내는 갈릴리로 돌아가 3년 전 버린 그물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와 그를 다시 사명의 자리에 세우십니다.
1. 갈릴리로 부르시는 예수님 (15a- )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15a) 이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곳은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입니다. 베드로는 왜 이곳 갈릴리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주님 을 버리고, 주님을 모른다 부인한 죄책감에 주님을 뵐 면목도 없었고, 또 그러한 자신에게 실망한 까 닭입니다. 이에 갈릴리로 돌아가 그물을 다시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부르심 때문입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주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 것입니다.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 저 갈릴리로 가리라”(막 14:28) 또한 안식 후 첫날, 여인들이 전해준 천사의 말 때문입니다. “예수께 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막 16:7) 그렇다면 주님은 왜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신 것일까요? 갈릴리는 그들에게 처음 사랑, 처음 부르심의 자리입니다. 거기서부터 지나온 3년을 복기(復棋)하게 함으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처음 사랑과 처음 사명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2. 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15bc- )
상처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실수와 잘못으로도 상처를 받을 수 있 습니다. 그 실패가 자신에 대한 실망과 낙심을 낳습니다. 이러한 상태로는 건강하게 부르신 사명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날 새벽, 요한 이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 하자, 베드로가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숨은 것이 아닙니다. 반가운 마음에 주님을 향해 헤엄쳐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변가에서 숯불을 피우고 떡과 생선을 구우 며 기다리시는 주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숯불을 보자, 며칠 전 대제사장의 집 뜰 숯불가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어깨에 힘이 쭉 빠집니다. 그날 새벽, 주님은 베드로에게 거듭 세 번 물으 셨고, 세 번 답을 받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 냐?”(15b)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15c)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 아셨습니다. 그러면 왜?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상처를, 거듭된 세 번의 사랑 고백으로 깨 끗이 씻어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있는 상처는 무엇입니까?
3. 동기와 목적을 회복하게 하시는 예수님 (15bcd- )
베드로의 답을 들으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것이 있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d) 3년 전 주님은 그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러주셨습니다. 전도의 사명입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얻은, 돌아오는 양들을 잘 먹이고 살펴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목양의 사명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베드로 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b) 물으시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d) 부탁하신 데에는 ‘상처의 치유’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 부르신 부름 의 길을 가는 동기와 목적을 점검하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이 부름의 길에서 실패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동기와 목적이 변질된 것입니다. 3년 전 이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 의 길을 가게 된 처음 동기와 목적은 ‘주님 사랑과 이웃(영혼)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 기 사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자리다툼을 하다 흩어진 것입니다. 주님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목적이 되지 않고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에 바른 동기와 목적을 회복함으로 부름 의 길에 바로 세워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의 동기와 목적은 어떻습니까?
2025-09-28
남광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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