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니고데모의 예수님, 나의 예수님!
요한복음 19:38-42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리마대 사람’으로 소개되는 요셉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사람’으로 소개되는 니고데모입니다.
이들 두 사람은 죽은 예수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드립니다.
이들이 경험한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일까요?
1.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예수님 (38a-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제자라 함은 배우는 자를 말합니다. 요셉은 여기에 처음 등장하 지만, 니고데모는 세 번 나옵니다.(3:1, 7:50, 19:39) 이들 두 사람은 예수께서 친히 택하여 세운 열두 제자에 들지는 않지만, 예수를 스승으로 삼고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배우는 자들이었습니다. 배움에서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계속된 만남 속에서 이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그러나 내가 배워서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여(reveal)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2. 껍데기를 벗게 하시는 예수님 (38b- )
요셉과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은밀 하게 예수님을 찾았고, 배움을 가져왔던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출교당할까 두려워 숨겨왔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본 뒤, 더 이상 숨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립니다. 벗어야 할 때 벗지 못하면 성장은커녕 죽습니다. 성장은 껍데기를 벗는 데 있습니다.
3. 서로 협력하게 하시는 예수님 (38-40)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성장은 혼자만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협력할 줄 아는 능력이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한 사람만 키우지 않으셨습니다. 열두 제자 소그룹을 세워 합력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여러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머리 되신 주님을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사는 것이 성도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 38절과 39절은 동사가 단수이나 40절은 복수입니다. 빌라도를 찾아가는 것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준비하는 것은 니고데모가 하였습니다. 이후 시신을 가져다가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는 것은 함께합니다. 홀로 할 수 있지만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4. 자신을 드리게 하시는 예수님 (41- )
성장은 받는 데서 드리는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어려서는 받기만 합니다. 부모님이 다 챙겨 줍니다. 그러나 자라면 부모 위할 줄 압니다. 섬길 줄 압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땐 받을 복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면서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할까를 생각합니다.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무덤이 있는지라”(41절) 향유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처럼 니고데모는 값진 향품을 드렸습니다. 요셉은 아무도 사용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5. 생명을 나누게 하시는 예수님 (42- )
“이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42절)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새벽,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오백여 형제’(고전 15:6) 안에 들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해오는 외경 중에 [니고데모 복음서]가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지었는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지만, 이들 두 사람이 예수의 증인으로 남은 삶을 살았음은 분명합니다. 이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의 제자 됨을 드러낸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성장하는 믿음의 꽃입니다. 열매는 주님이 주십니다.
2025-07-27
남광현 목사
2025-07-20
남광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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