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같은 교회
창세기 2:7-17
성경은 에덴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에덴을 상실했습니다. 실낙원(失樂園)입니다. 그런데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사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그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교회를 통해 에덴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복락원(復樂園)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에덴동산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에덴의 확장이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1. 생명을 회복하는 교회 (7-9)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7절)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죄요, 죄는 사망을 가져옵니다.(롬 6:23, 약 1:15) 그렇다면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덴을 상실하기 이전에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이렇게 설계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9절)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동산 중앙에 두신 것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보이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실패한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율법에 실패한 우리에게 다시 ‘보이는’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말씀(그리스도)을 통해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다시 내 삶의 중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2.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 (10-14)
주신 생명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은 사랑입니다. 생명을 누리면서 그 생명을 전하고 나누는 삶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10절)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삶에서 강은 흘러나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겔 47: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 22:1) 그런데 그 강이 네 갈래로 갈라져 온 땅을 적시며 흐릅니다. 네 강의 이름은 기혼, 비손,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기혼은 솟아 흐르는 강을, 비손은 넘쳐 흐르는 강을, 힛데겔은 힘있게 흐르는 강을, 유브라데는 열매를 맺으며 흐르는 강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믿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고여 있으면 안 됩니다. 썩습니다. 흘러야 합니다. 내가 살고 세상을 살리는 사랑의 삶입니다.
3. 정체성을 회복하는 교회 (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15절) 여기서 ‘동산’은 히브리어로 ‘간’입니다. 뜰(정원; garden)입니다. 뜰이 있다는 것은 울타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울타리는 울타리의 안과 밖을 구분 짓습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울타리’입니다.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삶입니다. 그 구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장치한 것이 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 사이에 선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16,17절) 이 선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고, 복입니다. 선을 무시하고 넘는 것은 죽음이요, 화입니다. 그 선이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그 선을 넘은 실패자,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 선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넘치는 은혜로 그 선을 지키고, 나아가 그 선을 넘은 자들을 품고 살리는 일을 즐거이 감당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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