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2) 광성교회 2부예배 |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따뜻한 소그룹 (3)_남광현 목사
2025-03-01 22:49:12
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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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따뜻한 소그룹 (3)

사무엘하 17:24-29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대비되는 소그룹을 봅니다. 한쪽은 압살롬과 함께한 아히도벨과 아마사의 소그룹입니다. 다른 한쪽은 다윗과 함께한,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겨 둔 후새와 사독과 아비아달의 소그룹, 그리고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은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의 소그룹입니다. 후자의 두 소그룹이 압살롬에 의해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합니다. 어떻게?

1. 분별하는 소그룹 (24-26)
   예루살렘을 재건한다 함은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분별입니다.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요일 4:1)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롬 12:2) 어떻게 하면 잘 분별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함께 분별하면 좋습니다. 바울도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았을 때 동역자들과 같이 분별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로 마게도냐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 인정하고 에게해를 건넜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소그룹을 이루어 분별하면 안전합니다. 둘째, 홀로 분별하든, 함께 분별하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자 구한 것이 있었습니다. 분별하는 지혜였습니다. 그것을 위해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두 가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백성들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를 더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본문의 압살롬이나 아히도벨이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모습은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늘 하나님을 구하는 자였습니다. 

2. 극복하는 소그룹 (27-29상)
   이렇게 하나님을 구하는 자, 분별하는 자는 극복합니다. 무엇을 극복해야 할까요? 27절에 광야에 몰린 다윗을 찾은 두 번째 소그룹이 소개됩니다. “다윗이 마하나님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27-29상)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 이들 세 사람이 극복한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욕망과 감정을 극복했습니다. 압살롬은 욕망을, 아히도벨과 아마사는 서운한 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이들 세 사람은 욕망과 감정을 극복하고 은혜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소비는 암몬 사람인데, 암몬과 이스라엘 나라는 근본 적입니다.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입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사울 왕과는 주고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울을 뒤이어 왕이 된 다윗에게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둘째, 두려움과 염려를 극복합니다. 압살롬의 시대가 되었는데 다윗을 돕는 것은 곧 죽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편안함과 불편함을 극복합니다. 먼길 마다않고 찾아주었습니다. 

3. 섬기는 소그룹 (29하- )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는 소그룹이 되려면 섬기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섬김은 열림입니다. 닫힌 모임이어서는 안 되고 열린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 조금 다른 사람에 대해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새로운 가족을 들이며 분가(分家)를 꿈꾸는 소그룹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좋은, 친교만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은 교회 안에 암적인 존재가 됩니다. 소그룹을 통해 온 나라와 열방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들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기를 섬기는 모임이 아닌 주님을 섬기고, 복음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섬김은 순종입니다. 후새와 사독은 다윗이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거기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 한 다윗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셋째, 섬김은 드림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물질을 드려 섬깁니다. 이들이 각종 생활용품과 먹을 것을 챙겨왔습니다. 넷째, 섬김은 마음입니다.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29절) 훗날 무엇을 기대하며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따뜻한 섬김은 해같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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